
그린델발트에서 곤돌라와 기차를 타고 바쁘게 뛰어다닌 이틀이 지났다.
이날 오후부터는 흐린 하늘에 비가 조금 내리기로 돼 있어 일정을 바쁘게 잡지 않았다.
비가 많이 오면 장을 보고 와서 숙소에서 쉴 생각이었고 움직일 수 있다면 인터라켄이나 이젤발트 정도 다녀올까 생각했다.
다행히 아침에는 날씨가 좋아 잔디밭에 앉아 삼각대를 펴고 가족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모처럼 준비해 온 돗자리를 펴 피크닉 분위기를 냈다.

오후가 되기 전에 갑자기 흐리고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날씨가 됐다.
어디로 떠날까 고민 끝에 다시 가 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사실 이번 여행을 가기 전 아내와 함께 넷플릭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마지막 회까지 봐왔다.
북한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로 알고 있었지만 촬영지 중 스위스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해서 의외라고 생각했다.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을 때는 좀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지나자 의외로 몰입해서 나중에 촬영지 투어를 떠나야겠다는 정도가 됐다.
그 촬영지 중에서도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젤발트.
드라마 촬영지가 아니더라도 호숫가에 위치한 아름다운 마을이니 한번 가볼 만하다.

하지만 역시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날씨가 큰 변수가 되기도 한다.
주차장에 주차해 보니 선착장에서 꽤 먼 거리였고 비가 조금씩 거세지는 상황에서 아이를 데리고 다닌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멀리 보이는 이젤발트 선착장을 카메라에 담았고 쇼핑을 겸해 인터라켄으로 차를 돌렸다.
나중에 날씨가 좋아지면 다시 오는 걸로.

인터라켄 Ost역 인근 쿠프 주차장에 주차해 가볍게 장을 본 뒤 밖으로 나왔다.
스위스 여행을 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인터라켄에 숙소를 가지고 움직인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생각보다 마을에 볼거리가 없을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어쩌면 날씨 탓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이곳은 그냥 교통이 편리한 베이스캠프 정도의 역할일 수도 있다.
그런 첫인상을 가지고 강을 따라 조금씩 걸어 내려갔다.



비가 조금씩 내려 비를 피할 겸 근처에 카페나 레스토랑을 둘러보니 꽤 멋져 보이는 호텔을 발견했다.
랜드너 그랜드 핫펠 Beau 리브지라는 호텔 1층에 분위기가 좋을 것 같은 자리가 펼쳐져 있었다.
엘앰비언스라는 호텔 레스토랑인데 사실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일단 비를 피할 곳이 필요했다.
바깥자리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강물을 보고 있노라면 이것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아이가 배가 고픈 것 같아 브이알 요리 하나와 샤프란이 들어간 리조또 하나를 주문했다.
먹을거리도 좋았고 비오는 날 강을 바라보는 그 풍경이 정말 좋았다.

비가 계속 내리자 그대로 숙소로 돌아가려다 갑자기 햇살이 살짝 비치기 시작해 다시 이젤바르트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보이던 브리엔츠 호수는 햇빛을 받는 부분이 에메랄드 색으로 빛나곤 했다.
이제르발트로 가는 길도 호반을 따라 굽은 국도를 택하니 무척 분위기가 좋았다.
버스가 보이면 마주하기 어려울 정도의 좁은 길이었지만 중간에 주차장에 세워놓고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이 호텔에 내려 선착장으로 가볼게.
아직 완전히 맑지 않아 물빛이 우리가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호수 너머로 보이는 마을과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사람이 거의 없어서 평화롭기도 하고.
시간이 늦어 배를 타지는 못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유람선을 타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이젤발트 선착장.
극 중 리정혁이 떠나기 전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선착장을 보는 순간 이곳이 어딘지 기억할 정도로 유명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맑은 날이었다면 더 예뻤을 것 같고, 인물 사진을 촬영해야 한다면 역광인 오후 시간대보다는 오전 시간대에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도 하루 종일 비 예보가 있는 날에 이 정도 날씨면 충분하다.
코로나 덕분에 관광객이 많지 않아 아주 여유롭게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선착장을 둘러보고는 이제르발트 마을을 둘러보았다.
선착장 근처에 놀이터가 있어 잠시 아이와 함께 미끄럼틀, 그네, 시소를 타며 놀아주었다.
독일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동네마다 공원과 놀이터가 잘 갖춰져 있다는 점인데 스위스도 그 부분은 독일과 상당히 비슷하다.
그런 면에서는 한국에서 스위스나 독일로 아이와 함께 여행을 온다면 좋은 시스템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아이를 데리고 마을을 따라 걷다 보면 꽃도 보여 마치 한국의 농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곳에 높은 산과 아름다운 호수가 어우러져 산책이 한층 즐거워졌다.

쿠프마트에서 장을 보고 온 고기와 레스티, 샐러드, 간단한 반찬으로 숙소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했다.
벌써 어느덧 앨리스 할머니의 샬레에서 아이거산을 볼 수 있는 시간도 절반 이상이 지났다.
다음 번에는 툰 호수를 중심으로 시그리스빌 다리와 온천으로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