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가장 관련이 있는 학문을 들으라고 하면 해부학은 필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는 스스로 시체를 해부하면서 인체 구조를 연구했다. 그림과 조각에서 정확한 인체를 구현하기 위해서였다. 미술대학에서는 해부학이 필수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해부학자들이 미술관에서 무엇을 찾아낼지는 매우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의 성공에 힘입어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가 이어지는데 이후 인문학자, 의학자, 수학자, 물리학자 등을 거치면서 다소 식상해지는 경향이 없지 않다. 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해부학자 편도 별 상관이 없는데 해부학을 억지로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부분이 적지 않다.
사실 해부학자들은 어떤 인체의 그림이나 사진을 보더라도 해부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그렇게 미술과 해부학의 거리는 멀지 않다). 그래서 해부학자의 미술 이야기는 어떤 그림이나 조각을 봤을 때 다른 그림이나 조각으로는 할 수 없는 해부학 이야기가 나와야 할 것 같다. 실제로 그런 이야기는 앞부분의 해부학으로 푸는 그림 속 미스터리에서 볼 수 있다. 여러 그림이나 조각에서 일반인은 찾기 힘든 비밀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명화에서 찾은 인체지도>는 그림을 통해 해부학 수업을 진행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림을 보여주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거기서 찾을 수 있는 인체의 구조, 즉 해부학적 구조를 말하는 것으로는 당연한 연관성 외에는 의외의 것을 찾기 어렵다. 그림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면서도 해부학에 들어가면 금세 흥미가 가라앉는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로 시작된 이 시리즈는 이제 해부학자까지 왔다(7회). 이 시리즈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사실 하나의 그림을 보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다양하다는 것이다. 각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남들은 볼 수 없었던 게 눈에 띈다는 점이다. 예술을 즐기는 것은 한 가지 방법만이 아니라는 것,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서 예술을 즐김으로써 무언가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시리즈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가장 소중한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