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온 화성 천문학자가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화성을 사랑한 천문학자 왜 하필 화성인일까?(…) 그것은 언뜻 보기에 화성이 지구와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화성은 지구에서 그 표면을 관측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행성이다. p. 219 정말 왜 화성일까? 많은 SF소설이나 영화에서 다루는 행성은 대개 화성이다. SF 소설의 초기 작품으로 유명한 허버트 조지 웰스가 쓴 우주전쟁(1897)도 화성인의 침공부터 최근 화성을 배경으로 생존투쟁을 벌인 마션이라는 영화까지. 화성이 지구와 가장 닮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구에서 관찰 가능한 천체 중에서는 화성이 최고다. 지구처럼 대기가 있고 바람이 불고 얼음으로 덮인 극관이 있어 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더욱이 하루가 24시간으로 지구와 같다. 앞서 본 금성은 너무 뜨거운 지옥이었다면 화성은 그래도 인류가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그리고 어떤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무한히 열어주는 상상의 장인 셈이다.

화성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풍부한 상상력을 펼친 천문학자가 있다. 그는 하버드를 졸업한 뒤 당시 조선으로 불리는 나라에서 준외교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인물이다. 그는 1916년 사망할 때까지 행성의 본질과 진화에 관한 지식과 우주 팽창에 관한 추론을 하며 코스모스를 위해 살았다. 무엇보다 그는 명왕성을 발견한 인물이기도 하다. 명왕성의 영어 이름은 Pluto인데 그의 처음 두 글자를 따서 지었다. 퍼시벌 로웰. p와 l을 앞에 두고 명왕성의 이름을 명명했다. 그러나 조선에 온 천문학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화성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천문학자 조반니 스키아파렐리의 카나리(canali) 연구에 몰두하면서 화성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졌다. 스키아파렐리는 화성이 지구에 가장 가까울 때 화성 표면을 자세히 관찰하고 밝은 지역 곳곳을 가로지르는 것을 그렸다. 이를 경로를 뜻하는 카나리라고 했는데 영어권에서는 이 단어가 ‘지적 존재가 설계한 구조물’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운하 canal로 번역됐다. 로웰은 이 흔적을 화성 전역에 걸친 관계 시설이며 화성에는 지구인보다 오래된 현명한 종족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의 이 주장은 많은 공감을 얻었고 무한 상상의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다른 과학자들의 반론은 숙명이었다. 그중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가 그의 주장은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자연 선택에 의한 생명 진화를 다윈과 함께 발견한 인물이었다. 윌리스는 로웰이 화성의 평균기온을 계산할 때 저지른 실수를 입증하며 화성이 영국 남부처럼 온화한 곳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물이 있다고 해도 화성의 기후상 바로 증발(화성의 대기압이 너무 낮아 찬물조차 급격히 증발)하거나 땅에 스며들 것이라며 화성에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착륙에는 이처럼 많은 제약 조건이 있었다.착륙지는 너무 높아서도 안 되고 바람이 너무 강한 지역도 안 되고, 너무 딱딱해도 안 되고, 너무 부드러워도 안 되고, 험해서도 안 되고, 극지방에 너무 가까워서도 안 된다.p. 243 이제 우리는 화성 탐사기를 보내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것이 당연한 시대에 살고 있으며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쉽게 느낄 수 없다. 우주탐사기의 아이디어는 러시아의 한 중등학교 교사 콘스탄틴 에두아르도비치 치오르코프식에서 나왔다. 행성까지의 교통수단으로 로켓을 꼽은 것이다. 이때가 19세기다. 기술이 진보하여 마침내 우주 탐사선이 발사되었다. 선두는 소련이었다. 1960년대 이후 매년 무인행성 탐사선을 쐈다. 그렇게 베네라 8호부터 12호까지 금성에 착륙했다. 금성의 대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얼마나 고밀도인지, 얼마나 부식성이 강한지 등 위대한 성과를 얻었다. 그럼에도 소련은 화성에 탐사선을 착륙시키지 못했다.

지금은 너무나 친숙한 교통수단인 비행기에서 아직 가장 위험한 순간이 이착륙할 때라고 한다. 화성 탐사 시도도 탐사선이 착륙하는 순간이 불안정해 실패했다. 착륙하는 순간 모래폭풍이 불어 착륙에 실패한 마르스 3호에 대해 칼은 이렇게 말한다. 마르스 3호는 사전 계획이 돼 있었기 때문에 적응적이지 않았다 정말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표현이다. 모든 것은 계획되고 움직이기 때문에 실패를 알면서도 순응해야 했다는 순교자적 표현이다. 우리 삶도 가끔 그렇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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