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 현미의 맏딸 고니(이용곤) 1962년 1월 11일(59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직업가수 뮤지컬 배우 방송인 부동산 컨설턴트 기업이 장르 트로트 활동 시기 1983년~배우자 고미숙(1959년생)
가족이 지은(둘째딸), 이진아(둘째딸), 이봉조(아버지), 현미(어머니), 이영숙(이복누나), 이영준(이복동생), 원준희(동모제수), 이은해(동모의 조카딸), 이민지(동모의 조카딸), 이민지(동모의 조카딸), 이민지(동모의 조카딸
1983년 미국에서 뮤지컬 배우 첫 데뷔, 1987년 미국 한인방송 라디오 MC 데뷔, 21년 후 2008년 1집 ‘첫사랑’을 발표하며 가수 데뷔, 앨범 수록곡 ‘첫사랑’, ‘미운정’이 트로트 음악차트에서 히트.


가수 현미의 나이 프로필, 고향 본명 : 김명성, 1937년 1월 28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출생 1937년 1월 28일(84세) 평남 평양시 직업가수, 작사가, 영화배우, 방송인 활동시기 1962년~현재 현미화려한 가족관계자 현미 이영곤(장남) 이영준희(장남), 한상진(장남), 박정은(조카) 노사봉(조카)

●가수 현미는 1937년 1월 28일 평양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원래 출생지였던 평양에 살다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4후퇴를 계기로 월남했다.

베트남 후 1957년 미8군 무대에서 검무 댄서였던 현미는 펑크난 가수의 대타로 무대에 올라 가수의 길을 걷게 됐다. 1958년 미8군 SHOW 무대에 출연해 명성을 얻었고, 1962년 이봉조가 개사/편곡한 곡으로 가요에 데뷔했다.
( 원곡은 Nat King Cole 의 It ‘ s A Lonesome Old Town ) .
이 곡을 통해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1963년에는 <보고 싶은 얼굴>이라는 곡을 불러 이산가족 상봉이 한창이던 당시 그들의 아픔을 노래로 달래주었다.
1960년대에는 패티 김, 이미자 등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가수로 인지도를 넓혔다.
현미에 주목한 작곡가 이봉조는 현미에게 <아 목동아>라는 팝송 번안곡을 주었고 그때부터 팝과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불렀다.
이봉조의 노래만 부르던 현미는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 아무 말 없이,
‘완전히 내 사랑’, ‘함부로 좋았다’ 등 히트곡을 발표해 한국 가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한편 1998년에는 48년 만에 북한의 가족과 재회했다.
53집을 냈고 TV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했으며 노래 강사로도 활동했다.
현미학력 덕성여자대학교 가정학과 명예졸업 1962년 1집 ‘밤안개’
현미 전 남편 이봉조 씨는 얼마 전 서울특별시청 공무원 직책을 잠시 지낸 경력이 있는 대한민국의 재즈 색소폰 주자, 작사가, 작곡가다.본관은 장수이다.

위키백과 이봉조 나이 프로필 출생 : 1931년 5월 1일 고향 남해군
사망정보 : 1987년 8월 31일 서울특별시
배우자 : 노정숙(1956년 – 1987년)
이봉조 자녀 : 곤이, 이용대, 이용준, 이지숙, 이영미, 이용숙
학력 : 진주고등학교, 진주중학교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27일 저녁 7시 TV조선
‘기적의 습관’에는
1962년 ‘밤안개’로 화려하게 데뷔한
가수 현미가 출연한다.









80대 중반의 나이에도 굴하지 않고 노래하고 춤추며 건강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시원한 성장으로 아침을 시작한 현미는, 자주 노래를 흥얼거린다.
냉장고 안의 채소와 과일, 우유를 꺼내 건강주스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양 조절에 실패해서 걸쭉한 주스를 숟가락으로 떠서 마시면 누군가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면 놀랍게도
그 대상은 강아지 인형.현미 씨는 혼자 사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강아지 대신 강아지 인형을 가족에 넣었다.
인형에게 동요까지 불러주며 남다른 교감을 나눈다.
이어지는 아침 일과는 스트레칭.그는 30년 동안 매일 아침 스트레칭을 해 왔다.
체조를 하던 현미는 얼룩덜룩한 손톱을 발견하고 직접 네일아트를 하기 시작한다.

원조 멋쟁이답게 화려한 핫핑크색으로 손톱 손질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TV로 보여준다.
현미노래와 웃음 가득한 시트콤 같은 일상이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