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 [김주대의 진곡곡 생활]나훈아와 노훈아.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고 많은 이들이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호소할 때 가수 나훈아의 콘서트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는 슬픈 2020년 추석을 확실히 훈훈하게 만들었다. 콘서트에 처음 등장한 ‘태수 오빠’라는 노래는 다소 생경했지만 재미있는 충격을 주기도 했다.

“아! 태수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태수씨 소크라테스씨/세월은 또 왜그러니/먼저 갔던 저승 어때요 태수씨/가보니 천국이 있었나요 태수씨…”

나훈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많은 말을 했기 때문에 어렴풋이 알고 있던 나훈아의 가창 가수 중 한 명이 생각났다. 나훈아의 가창 가수로 ‘노훈아’와 ‘나은하’가 있었지만 두 사람은 공생할 수 없는 숙명적 라이벌이었다. 노훈아와 나은하는 남들이 봐도 서로 거리를 둔 안면식한 사이였던 것 같다. 그런데 노훈아가 죽자 나은하가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아 슬프게 울었다.기자들이 왜 그렇게 슬프냐고 묻자 나은하는 생전 노훈아와의 관계에 대해 “남들은 라이벌이라고 했는데 스케줄이 잡혔는데 급한 일이 생기면 대신 나가주는 등 알게 모르게 서로 도와준 정말 친한 사이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한 배를 탄 형제였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알고 있던 것은 두 사람의 외모였지 속마음은 아니었다. 과거 나훈아의 형 ‘태수’는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말을 남겼다.

간암 선고를 받고도 노훈아는 병색을 드러내지 않고 독거노인을 위해 봉사활동을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2014년 12월 10일 서울 강북구 자원봉사자의 날 행사에서 불렀던 노래를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훈아의 형이기에 나훈아의 형이기도 한 태수 형은 이런 말도 남겼다. 죽음을 면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비굴함을 면하기가 훨씬 어렵다. 그것은 죽음보다 빨리 달리기 때문이다.” 나훈아의 성대모사 가수 노훈아는 비록 남의 노래를 따라하는 사람이었지만 비굴하게 살지는 않았다.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 죽겠다던 노훈아는 노래로 살다가 노래로 죽었다.

(성대모사 가수로 조현필, 설훈도, 밤실리, 방쉬리, 임희자, 현숙이, 현찰, 태준아, 주영미, 송대관, 파튀김 등이 있는 것 같다. 무단으로 가련하지만 재미있는 이름이다.)

나훈아에 대해 10명이 10명이서 이야기한다. 나라를 점령한 듯한 뽕짝의 천한 역사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나름 지식인들은 나훈아와 노래를 비웃고, 먹먹하고 착한 사람들은 나훈아와 그의 노래를 그저 좋아하고, 젊은이들은 무슨 저런 일이 있느냐고 한다. 10명에게 나훈아의 테스형 소크라테스는 어릴 때는 겸손하고 젊었을 때는 온화하고 장년은 공정하라. 그리고 늙어서는 신중하라고 말한다.

사실 제대로 된 노래는 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몸의 떨림에서 나오고 그 몸의 떨림은 우주의 시원(폭발)에 반드시 닿아 있다. 우주가 생긴 대폭발 순간에 발생한 떨림으로 지금도 우주는 확장되고 있다. 그 확장과 떨림(와류, 복사에너지, 암흑물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 떨림은 지식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다. 아니, 느끼는 거다. 느끼는 사람의 떨리는 가냘픈 몸에서 노래는 나오기 때문에 누구나 잘 못하는 것이 노래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노래는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저속하지만 슬픈 유치하지만 구성돼 슬픈 인민의 노래를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출처 : 서울신문 2020-10-2830면 오피니언 김주대 시인, 문인화가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