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 #1’s, 90년대를 대표하는 디바 가수

팝송을 제대로 듣기 시작한 시기가 1990년대 초반으로 다들 처음에는 라디오 방송에 입문하거나 DJ로부터 관련 정보를 스폰지처럼 흡수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MBC FM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광고를 듣습니다. 가 방영 31주년을 넘어 대한민국 라디오 프로그램 사상 최장수 프로그램 기록을 2년여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최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은 33년 방송의 “싱글벙글 쇼”라고 한다.)

지역 록밴드 ‘송골매’의 기타리스트이자 얼굴 마담으로 활약했던 배철수 아저씨(…)가 라디오 DJ로 업종을 바꿨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다. 방영을 시작한 지 1년여 만인 1991년부터 꾸준히 시간이 날 때마다 배컴을 들으며 90년대 초중반 영미 대중음악을 접하는 통로로 만들었다. 인터넷과 유튜브가 먼 미래의 일이던 시절 베컴과 지구촌 영상음악, Mtv, 채널V에서 해외 팝음악을 섭취하다 보니 지금처럼 원하는 채널이나 동영상을 손에 쥐고 시청할 수는 없었다. 메인 종목(?)을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으로 정한 뒤에는 본격적인 편식에 들어갔지만 뮤직비디오 채널이나 위성방송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강제로 봐야 하는 아티스트와 음악이 분명 있었다.

보는 이들에게 광고 수준의 집중 물량 공세를 퍼부은 메이저 음반사에서 당당히 뒷받침한 가수 중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를 지금도 1위로 꼽기도 한다. 라디오 방송이든 뮤직비디오든 이분이 폭풍우처럼 쏟아내는 히트곡의 융단 폭격을 도저히 피할 방법이 없었다. 불가피하다면 즐기라고 했지만 8옥타브를 넘나드는 가창력의 소유자라고 방송 진행자들이 입이 마를 정도로 칭찬이 많은 머라이어 캐리는 록 음악에 입문한지 얼마 안된 패들(…) 입장에서는 뮤직비디오든 노래든 제발 빨리 지나가길 바랐던 가수였다.

본의 아니게 머라이어캐리의 히트곡을 반강제 주입받았기 때문에 지금은 가끔 찾아 들을 정도로 90년대 초중반을 대표하는 디바(Diva)로 기억한다. 관심이 없어도 귀에 자연스럽게 들어온 곡은 당연히 싱글 차트 히트곡이지만 라디오 방송과 뮤직비디오를 시청하면서 꾸준히 쌓아올린 1집 ‘Mariah Carey(1990)’부터 5집 ‘Daydream(1995)’까지가 머라이어 캐리 음악을 기억하는 마지노선이다.

휘트니 휴스턴의 대항마로 혜성처럼 등장해 싱글 차트를 휩쓴 히트곡을 쏟아낸 머라이어 캐리의 데뷔 앨범 ‘Mariah Carey’는 90년대 팝스타들의 세대교체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90년 6월 발매 후 첫 싱글 Vision of Love는 댄스 팝(Dance Pop) 위주였던 80년대 팝송과 차별화된 슬로우 템포에 가수의 감정이 듬뿍 묻어나는 창법을 선보여 평론가들의 호평과 함께 빌보드 Hot 100 차트 1위에 4주간 오르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연이어 싱글로 발매된 러브 테이크 타임, 소메데이, 아이든트 워너크리가 모두 빌보드 핫 100 차트에 4연속 1위를 기록했고 머라이어 캐리의 데뷔 앨범은 미국에서 900만장, 월드 와이드 1,500만장이 팔리며 90년대 팝 신데렐라 탄생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듬해인 1991년 9월 발매된 2집 Emotions는 소포모아 징크스에 빠진 모습을 보여 데뷔 앨범을 넘지 못했다. 첫 싱글 이모션은 가볍게 빌보드 핫100 차트 1위를 기록했지만 듣는 이를 살짝 소름 돋게 하는 히히힝~ 돌고래 창법이 호불호가 갈려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두 번째 타자로 나선 발라드 곡 ‘Can’t Let Go’는 빌보드 2위에 오르는데 그쳤고 연속 1위 곡 행진은 매직 넘버5로 중단됐다. 정체됐다는 평가 속에서도 미국 판매 400만장과 전 세계 800만장을 기록한 ‘이모션스’ 이후 머라이어 캐리는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90년대 초 유행처럼 번진 언플러그드 공연의 불꽃을 머라이어 캐리도 피할 수 없었다. 1992년 3월 16일 뉴욕에서 열린 머라이어캐리의 언플러그드 공연은 30분이 채 안 되는 짧은 러닝타임 공연이었지만 EP로 발매돼 미국에서 300만 장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히트작이 됐다. 앨범에 수록된 7곡 중 잭슨5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일베테어가 Mtv에서 연이어 틀었던 뮤직비디오 집중 포화(?)에 힘입어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2주간 1위에 오르며 머라이어 캐리에게 6번째 1위곡을 선물했다. 목소리에 기교가 너무 들어간 2집 ‘Emotions’와 비교해 라이브 공연에서 깔끔하게 뽑아내는 가창력이 빛나 머라이어 캐리는 다시 최상의 컨디션을 회복하는 듯했다.

1993년 8월 발매된 3집 뮤직박스는 2집의 부진을 딛고 머라이어 캐리의 인생작으로 평가받는 성공을 거뒀다. 목소리 옥타브를 높이는 창법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며 스펙트럼을 넓힌 ‘뮤직박스’에서 첫 싱글로 나온 가볍고 신나는 리듬이 실린 드렘로버는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무려 8주간 1위를 기록하며 화려한 컴백을 알렸다. 두 번째 싱글 ‘Hero’도 빌보드 차트 1위를 4주간 기록하며 히트곡 행진을 이어갔다. 헤로는 당시 학교에서 가사에 푹 빠진 영어 선생님 한 분이 친절하게 영문 해석까지 붙은 프린트를 손수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눠주면서 “이런 건 가사를 생각하면서 좀 들어~”라며 리스닝을 적극 권했던 기억이 있다. 뮤직박스는 머라이어 캐리의 90년대 경력 중 가장 성공한 앨범으로 꼽힌다. 미국에서 1,0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았으며 세계적으로 3,000만 장 가까운 판매 성적을 거뒀다.

이듬해인 1994년 10월 말 말라이어 캐리는 4집이자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스페셜 앨범 메리 크리스 마스로 돌아온다. 훈훈한 연말연시가 떠오르는 앨범 커버와 함께 싱글로 발매된 All I Want for Christmasis You는 처음 들었을 때부터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멜로디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머라이어 캐리가 공동 작곡한 노래였다. 올아이원트 포 크리스트마시스유는 90년대를 10대 또는 20대 청춘남녀로 통과한 이 땅의 모든 커플에게 달콤한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크리스마스 대표곡으로 20년이 지난 오늘까지 사랑받는 클래식 명곡 대열에 올랐다.

이후 머라이어 캐리의 경력은 성공 가도를 달렸다. 1995년 발매된 5집 ‘데이드림’에서 보이즈 투맨과 함께한 원스윗데이가 빌보드 핫100 차트 16주 연속 1위라는 역대급 기록을 세웠다. 1997년 발매된 6집 Butterfly까지 머라이어 캐리는 톱스타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1998년 11월 머라이어캐리의 첫 베스트 앨범 ‘#1’s’가 발매되었다. 머라이어 캐리의 전성기를 한 방에 정리한 1위 곡집으로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기록한 13곡 싱글곡에 4곡의 신곡을 넣어 1장으로 만들었다. 미국에서 500만장, 월드와이드 1500만장이라는 최고의 성적표를 받았지만 머라이어캐리는 음반사의 영향력이 강하게 들어간 전술이라며 자신이 선호하는 곡이 빠져 있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머라이어캐리의 베스트 앨범은 이후에도 대여섯 장이 추가로 발매됐지만 전성기 캐리어를 정리한 ‘#1’s’가 최상의 선택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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